사람들은 모두 청년인턴이 한시가 바쁜 취업 준비생들에게 시간만 버리는 기간이라며 빨리 그만두고 취직준비를 하라고 하셨고

단기적 국가 실직률을 낮추려는 국가제도의 희생양이라며 안타까워하셨다.


더군다나 2013년도 상반기에 학교 후배가 취직을하며 입사를 하게 되는 바람에 더더욱이 청년인턴이란것을 계속해야하는지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실망만 많이 하게 됬던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멋모르고 시작했던 청년인턴덕분에 한국중부발전이 어떤곳인지 알게됬고..

공기업이 어떤곳이며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많이 배울수있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좋은 분위기속에서 사람들의 친절함과 따듯함을 배울수있었고.. 


못올라갈 나무처럼만 보이던 이상향 같은 직장이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의 용기덕분에 현실적으로 바라볼수있는 곳이 되가고있었다.

또한 채용준비에 있어서 청년인턴의 시간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렇게 5개월의 시간이 지나 2014년이 되었고 첫 대졸신입직원 채용이 시작됬다..

항상 인적성에서 고배를 자주 마셨던터라 큰 자신감은 없었고..

인성시험이 2번, 적성검사와 한국사, 전공시험이 필기시험이 되었고.. 적성검사를 그렇게 잘 보지 못해서 정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많이난다..

그리고 인적성합격.. 최종합격보다도 가장 덜덜떨리며 확인하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하루만에 진했된 3가지 형식의 면접 후 

총 100명을 합격시키고 마찬가지로 5개월 후 75명만 합격시키는 가혹한 채용제도덕분에 울며겨자먹기로 버텼다.


5주간의 교육속에서 피말리는 동기와의 시험점수 경쟁.. 그리고 사업소 인턴배치기간동안의 겉으로는 모두 웃고있지만 모두 경쟁심리가 팽배히 깔려있는것이..

좋은 기억들 보다도 채용에 대한 정신적인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최종적인 합격통지서.. 사실 연수원성적이 어느정도 높았기때문에 채용에 대해서 그렇게 큰 부담을 가지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여러사람들의 지원들도 큰 역할을 했고.. 심적인 부담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이것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이제까지의 학생신분에서 벗어나 회사생활, 사회생활속으로 빠져야할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설렘반 기대반이 사실이다.. 앞으로 어떻게 미래가 펼쳐질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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